
몇 해 전, 지역이 가진 다양한 매력들을 공부하다 우연히 발견한 기사였다.
‘국내에도 옥광산이 있구나.’
‘그런데 그게 중국 자본에 넘어갔다고?’
갑자기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옥가락지와 옥목걸이를 끼고, 손바닥만 한 옥을 손에 쥔 채 “옥이 몸의 기운을 좋게 해준다”고 말하던 엄마.
그리고 옥장판, 옥매트처럼 미신과 상술이 뒤엉킨 이름들. 지체 높은 양반의 옷자락 끝에서 금과 함께 반짝이던 옥의 흔적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옥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은반지보다 옥반지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지인조차 “옥반지는 어디서 사야 할지 몰라. 가끔 옥처럼 생긴 플라스틱 반지를 끼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찾아보니, 국내에도 여전히 옥공예를 이어가는 명인들이 계셨다. 하지만 대부분 연세가 80을 넘기셨고, 네이버 스토어는커녕 블로그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신다. 대부분의 전통 문화가 비슷한 상황이다.
그분들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귀한 가치를, 이어나갈 사람이 없다.
가치는 계승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현대의 삶과 적절한 타협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다음 세대’가 없다는 점이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어떻게든 숨만 붙여놓는다 한들,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또다시 사라짐을 맞이할테니. 춘천 옥광산의 지분이 중국에 넘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는 '수요'가 있다. 중국은 여전히 옥을 금처럼 귀하게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옥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중국은 그것을 여전히 원한다. 수요가 있는 곳으로 공급자본이 옮겨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중국을 따라가야 한다거나 그 문화가 옳다는 게 아니다.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우리 안에서도 ‘수요’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래야 비로소 건강한 자생력이 생긴다. 비단 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잊히고 사라지는 문화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옥산은 다음 세대가 자연스럽게 ‘원하게 되는’ 무언가를 만들려 한다.
‘안쓰러우니까 도와줘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멋있어서, 예뻐서, 근사해서’ 갖고 싶어지는.
<옥산>은 그 지점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그런 문화를 찾고, 글을 쓰고 널리 알리기 위해 고민한다.
사라져가는 귀한 문화가 더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오늘의 일상 속에 근사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이 일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걸,
가치를 이어나갈 다음 세대가 우연히 우리를 발견하게 될거라는 걸 믿는다.
몇 해 전, 지역이 가진 다양한 매력들을 공부하다 우연히 발견한 기사였다.
‘국내에도 옥광산이 있구나.’
‘그런데 그게 중국 자본에 넘어갔다고?’
갑자기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옥가락지와 옥목걸이를 끼고, 손바닥만 한 옥을 손에 쥔 채 “옥이 몸의 기운을 좋게 해준다”고 말하던 엄마.
그리고 옥장판, 옥매트처럼 미신과 상술이 뒤엉킨 이름들. 지체 높은 양반의 옷자락 끝에서 금과 함께 반짝이던 옥의 흔적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옥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은반지보다 옥반지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지인조차 “옥반지는 어디서 사야 할지 몰라. 가끔 옥처럼 생긴 플라스틱 반지를 끼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찾아보니, 국내에도 여전히 옥공예를 이어가는 명인들이 계셨다. 하지만 대부분 연세가 80을 넘기셨고, 네이버 스토어는커녕 블로그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신다. 대부분의 전통 문화가 비슷한 상황이다.
그분들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귀한 가치를, 이어나갈 사람이 없다.
가치는 계승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현대의 삶과 적절한 타협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다음 세대’가 없다는 점이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어떻게든 숨만 붙여놓는다 한들,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또다시 사라짐을 맞이할테니. 춘천 옥광산의 지분이 중국에 넘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는 '수요'가 있다. 중국은 여전히 옥을 금처럼 귀하게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옥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중국은 그것을 여전히 원한다. 수요가 있는 곳으로 공급자본이 옮겨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중국을 따라가야 한다거나 그 문화가 옳다는 게 아니다.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우리 안에서도 ‘수요’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래야 비로소 건강한 자생력이 생긴다. 비단 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잊히고 사라지는 문화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옥산은 다음 세대가 자연스럽게 ‘원하게 되는’ 무언가를 만들려 한다.
‘안쓰러우니까 도와줘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멋있어서, 예뻐서, 근사해서’ 갖고 싶어지는.
<옥산>은 그 지점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그런 문화를 찾고, 글을 쓰고 널리 알리기 위해 고민한다.
사라져가는 귀한 문화가 더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오늘의 일상 속에 근사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이 일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걸,
가치를 이어나갈 다음 세대가 우연히 우리를 발견하게 될거라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