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찰자의 시선 #3 - 취향 [趣向]

2025-10-14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해질녘까지 노닐다 집에 들어간 9살 소년은 목이 말랐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을 차리고 있었고, 냉장고에는 물과 우유, 그리고 주스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묻습니다.


“ 물, 우유, 주스 있는데 뭐 마실래? “


목이 마른 소년은 아무거나를 외쳤고, 그 외침에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 냉장고에 ‘아무거나’는 없단다. “


한 잔의 음료도 얻지 못한 소년은 결국 스스로 주스를 꺼내 마시며 매정한 어머니를 곁눈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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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릴 적 이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단이 없었던 우유부단한 성격이 앞으로 삶에 있어 실행력을 갖지 못할까 어머니는 예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되어, 뚜렷하고 날카로운 자존감은 희석된 채, 무엇이든 두루 잘하고 싶었던 욕심과 자존심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양한 기회에 대한 선택과 책임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가르침을 교육받지 못한 채, 

한국사회가 만들어내는 5지선다형 객관식 물음에 하나의 정답만 있다고 믿으며 미래를 좇은 일반적인 학생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특기와 취향을 알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벌써 인생과 사회에서 제 역할을 가지고 가장 활발히 활동해야 하는 시기(時機)가 되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한껏 늘어났습니다. 

지금도 스스로를 무채색에 가깝다고 느끼며, 빠른 선택과 행동을 두려워하고, 

취향이 짙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넘어 시기(猜忌)와 질투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건 아닐까 합니다.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듯, 다양한 색상을 받아들이며 오늘도 스스로를 무채색 중에서도 가장 짙을 수 있게 다독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기 색을 지니길, 

그리고 인생은 주관식이니 취향껏 선택하고 행동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며 책임감 있게 자신만의 해답을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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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오렌지주스의 상큼함이 유독 혀에 맴도는 밤입니다.


[ Image made by. Collector H.]